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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을 빛낸 선조

 

우리 순흥안씨의 가문을 빛낸 선조는 너무나도 많아 어느 선조를 여기에 열거 설명 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고려조와 조선조에 걸쳐 시호를 받은 선조와 문형선조, 그리고 봉군선조와 근세 인물은 설명한다.

 

우선 우리 가문을 빛낸 선조님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데 대해서는 우리 관향지인 순흥의 12척 대비인 순흥안씨 추원단비에 새겨진 비문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초조이신 상호군공께서는 덕업을 닦아 여경을 기르심으로써 도학문장 충효절의가 뒤로 서로 이어서 대대로 세상에 공헌하였고 문벌의 융성함은 송나라 하남의 정씨(程氏), 신안의 주씨(朱氏)와 더블어 함께 꼽을 만하다. 과거에 등제한 현인군자를 요약 기록하면 문과 180분, 사마 325분, 충신 55분, 봉군 또는 시호를 하사받은 분이 30여분이요, 문묘배향과 서원사향이 60여위이며, 항일투쟁에 이르러서는 애국지사로 안중근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 외에 수백 인에 이른다.”

 

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은 성균관장 김경수(金敬洙) 선생이 지은 것이지만 우리 가문을 빛낸 선조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호를 받으신 선조와 문형[조선시대 홍문관과 예문관에 둔 정2품의 대제학(大提學)을 문형이라고도 불렀다. 고려시대에는 대학사(大學士)로 불렸으나, 태종 1년(1401)에 대제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선 전기에는 예문관에만 대제학을 뒀으나, 세종 2년(1420) 집현전(集賢殿)에 대제학을 두었고, 세 조 2년(1456) 집현전을 홍문관으로 고쳤으나 대제학은 그대로 뒀다. 대제학은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종신까지 재임했다.] 선조, 봉군선조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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